어느 날 갑자기 주식 계좌에 잠들어 있는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. 그냥 예수금으로 두면 이자가 푼돈 수준도 안 나오니까. 작년까지만 해도 예적금 금리가 높아서 고민할 것도 없었는데, 요즘은 분위기가 좀 미묘하니까 다들 채권 이야기를 하길래 나도 한번 해볼까 싶었다. 사실 거창한 공부를 한 건 아니다. 그냥 뉴스에서 미국 고용지표가 어쩌고 뉴욕 채권 마감가가 어쩌고 하는 기사들을 대충 훑어보다가 ‘아, 나도 국채 같은 걸 사면 매달 이자 따박따박 나오겠구나’ 싶었던 거다. 그게 시작이었다. 미래에셋증권 앱을 켜고 채권 메뉴를 찾아 들어갔는데, 생각보다 종류가 너무 많아서 당황했다.
뭘 사야 할지 몰라 헤매던 시간들
화면을 가득 채운 이름들이 낯설었다. 한국국채 10년물, 어떤 회사채, 뭐 이상한 이름의 금융채들. 당장 뭘 골라야 할지 몰라 몇 시간을 검색창만 붙들고 있었다. 누구는 국채가 안전하다고 하고, 누구는 신용등급이 낮아도 금리 높은 회사채를 노리라고 하는데, 지금 내 상황에서 그런 걸 가릴 능력이 없었다. 채권 가격이 금리에 따라 움직인다는 기본적인 원리는 아는데, 막상 사려고 하니 이게 지금 싼 건지 비싼 건지 도무지 감이 안 잡혔다. 결국 국채 10년물 몇 주를 그냥 매수 버튼 눌러서 샀다. 한 주당 가격이 생각보다 단위가 커서 놀랐지만, 일단 질러보자는 심정이었다. 그런데 사고 나니까 왠지 모를 불안함이 엄습했다. 이게 만기까지 가지고 있으면 원금이 보장된다는 건 아는데, 중간에 급전이 필요해서 팔아야 할 때 손해를 보면 어쩌나 하는 생각 때문이다.
채권추심이나 소멸시효 같은 무서운 단어들
채권 공부를 좀 더 해보겠다고 관련 커뮤니티를 기웃거렸는데, 분위기가 영 달랐다. 사람들은 ‘채권추심’이나 ‘소멸시효’ 같은 험악한 단어들을 주고받고 있었다. 알고 보니 내가 생각한 채권 투자와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. 누구는 급여 미지급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, 누구는 빌려준 돈을 못 받아 채무이행각서를 들고 다니는 이야기들. 내가 하려던 건 투자인데, 사람들의 글을 읽다 보니 채권이라는 게 참 팍팍하고 무서운 존재처럼 느껴졌다. 물론 내가 산 국채와는 상관없는 이야기지만, ‘채권’이라는 글자만 봐도 괜히 위축되는 기분이었다. 사실 투자라는 게 원래 이렇게 차갑고 계산적인 것인데, 내가 너무 낭만적으로 접근했나 싶기도 하다.
이자가 들어오긴 하는데 참 소소하다
얼마 안 되는 금액이지만, 계좌로 이자가 들어오는 걸 보니 기분은 묘했다. 주식처럼 매일 등락에 일희일비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은 확실히 편하다. 하지만 10년물 국채를 사놓고 보니, 이 돈이 앞으로 10년 동안 내 손을 떠나 있을 거라는 사실이 갑자기 실감이 났다. 3천만 원 정도를 넣어두고 매달 혹은 분기마다 찍히는 이자를 확인하는데, 커피 한두 잔 마실 금액이다. 이걸로 뭘 하겠다고 이렇게까지 했나 싶지만, 그렇다고 다시 주식 창을 켜서 단타를 치고 싶지는 않다. 주식은 장 열릴 때마다 쳐다보게 되는데, 채권은 일단 사놓고 나면 확실히 덜 보게 된다. 이게 장점인지 단점인지 잘 모르겠다.
융자 있는 집과 채권의 묘한 공통점
우연히 부동산 쪽 기사를 보다가 ‘채권최고액’이라는 단어를 봤다. 7억짜리 아파트에 융자가 4억 넘게 잡혀있으면 실제 대출금은 그보다 적을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. 갑자기 내 채권 투자와 이게 무슨 상관인가 싶다가도, 결국 남의 돈을 빌려주고 빌리는 관계가 곳곳에 깔려있다는 게 참 씁쓸했다. 채권자는 채권을 쥐고 있고, 채무자는 빚을 갚으려 애쓰고. 나는 지금 국채를 샀으니 국가의 채권자가 된 건데, 국가가 나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이 뭔가 든든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상한 기분이다.
앞으로 계속 가지고 있어야 할까
오늘도 증권 앱을 켰다가 금방 껐다. 오늘 증시 현황이 어떻든 채권은 별로 상관이 없는 것 같으면서도, 금리가 요동치면 채권 가격도 움직인다고 하니 은근히 신경이 쓰인다. 애초에 만기까지 가져갈 생각으로 샀으니 그냥 두는 게 맞는데, 자꾸만 오늘 당장 팔면 얼마를 손해 보는지 확인하게 된다. 10년은 너무 긴 시간이다. 1년 뒤에 마음이 바뀌면 어쩌지? 그때 가서 채권 가격이 떨어져 있으면 어떡하나? 이런 고민을 하면서도 오늘도 국채 수익률을 확인하며 하루를 보냈다. 그냥 은행에 넣어둘 걸 그랬나 하는 후회와, 그래도 나름 투자라는 걸 해보고 있다는 약간의 뿌듯함이 뒤섞여 있다. 이 불확실한 기분이 앞으로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다.

국채를 사보니 정말 복잡한 세상이네요. 특히 채무자라는 관점에서 국가가 채권자를 대하는 상황이 흥미롭습니다.